“10년 후 중국을 알려면 칭화(淸華)을 이해하라”는 말이 있다. 폐쇄의 틀을 깨고 세계 정치외교의 중심 무대로 부상한 중국의 지도자 중 많은 사람이 이 대학 출신이다. 이들은 ‘칭화방(淸華幇)’이라 불린다. 1990년대 중국 경제개혁을 이끈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제4세대 지도부를 이끌고 있는 후진타오(胡錦濤) 현 국가주석과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칭화대 출신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4명이 칭화방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중국의 정치 경제 과학기술 교육 국방 분야에서 이 대학 출신이 신주류를 이루고 있다.
칭화대는 올해로 개교 94주년을 맞았다. 칭화대 역사는 1900년 발생한 의화단 사건의 배상금으로 설립한 칭화학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1952년에는 공학대학으로 특성화되고, 1970년대 말∼80년대 초에 이공·경상·인문·사회과학 과정이 개설되면서 비로소 종합대학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입학을 위해 칭화대를 처음 방문했을 때 엄청난 캠퍼스 규모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400여ha(400만여㎡)의 캠퍼스에는 없는 게 없다. 인문사회과학학원 경제관리학원 법학원 이학원 등 13개 단과대학과 37개 연구소(석·박사과정), 175개 과학실험실을 확보하고 있다.
재학생은 2만7000여명, 교수는 2775명에 달한다. 70개국에서 온 유학생과 연수생도 1700명에 이른다. 현재 석·박사 과정과 학부 과정의 외국 유학생은 546명으로, 이 가운데 한국 유학생이 200여명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재학생과 교수 대부분이 교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대학이 얼마나 크겠는가. 부속 유치원에서 초·중·고교, 대학 퇴직자를 위한 양로시설까지 있다.
교내에는 1만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형 식당과 할인시장까지 갖춰져 있다. 이 시설들을 누리며 평생을 사는 칭화인(淸華人)은 교육열이 강한 중국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지식의 노블레스 계층이다.
칭화대는 중국 정부가 미는 명문대학 지원정책의 최대 수혜 대학이다. 그러나 세계 일류 대학을 향한 자체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노벨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받은 양전닝(楊振寧)·리충다오(李崇道) 박사는 칭화대의 수준이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6호를 쏘아올린 기술자들도 대부분 칭화대 출신이다. 칭화대 출신인 왕융즈(王永志) 원사는 우주선 총시스템 설계를, 왕신펑(王新峰)은 주취안(酒泉) 위성발사센터를 지휘했다.
이 밖에도 선저우 우주선 계획의 중심에 있는 칭화대 출신은 20명이 넘는다. 뿐만 아니라 이 대학 교수 2000여명이 핵에너지, 나노, 항공우주, 해양과학, 생명과학, 컴퓨터정보 분야에서 매년 3000여건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가진 특허만도 3711건에 이른다.
칭화대가 다른 대학과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많은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칭화 계열 기업의 지주회사인 칭화홀딩스는 등록자본금 20억위안으로, 칭화퉁팡(淸華同方) 칭화쯔광(淸華紫光) 등 정보·에너지·환경·생명·과학·나노 분야의 52개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 총액은 200억위안(약 2조4000억원)에 달한다.
칭화대에는 13억 인구 가운데 선발된 ‘국가대표’급 수재가 모인다. 대다수 재학생은 글로벌 리더를 강의실에서 만나고 막힘 없는 영어실력으로 그들과 토론을 한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산·학·연 협력 시스템이 칭화대학을 발전시키는 하드웨어라면 간판보다는 실력을 중시하고 말보다는 행동을 중시하는 학풍은 소프트웨어다. “스스로 부단히 노력하고, 도덕을 갖춘 인격에 물질적 부가 따른다(自强不息 厚德載物)”는 교훈은 중국의 글로벌 인재를 키워내고 있다.
'지식과 기술, 경영과 리더십'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칭화대 유학을 권한다.
(출처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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